골방 천재 아닌 협업 리더로 자라기
믿고 보는 지인 추천
회고모임의 아주 똘망똘망한 청년이, 자신이 AC2라는 김창준 님의 프로그램을 고액임에도 돈이 아깝지 않게 들었다고 공유해서 그때부터 김창준 님의 블로그를 찾아봤었다. 그의 글들은 인사이트가 넘쳤고, 블로그와 유튜브에 있는 그의 영상으로는 답답해서 책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혼자 아니고 함께 자라기
함께 자라기는 굳이 책의 유형을 분류하자면 자기 계발/생산성 책이다. 그러나 혼자 자기계발하고 잘 처세하여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과 달리, 혼자에서 나아가 '함께 계발'에 대해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다른 사람과 협업하며 자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효과적이며',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잘 협업하고 잘 성장할 수 있는지'를 논리와 구체적 사례의 적절한 배합으로 이야기하는데, 저자의 배경 때문인지 프로그래밍의 사례를 많이 든다. 나의 경우 generalist, 즉 혼자는 아무것도 못하는 직무를 갖고 있으며, IT회사에서 계속 일해왔기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가치관이나 프로그래밍적 접근이 매우매우매우 와닿았다.
비즈니스/프로그램 매니저로서 내가 꼭 기억하고 싶은 메시지는 세 가지다.
프로젝트를 나선형(혹은 프랙털)으로 관리해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협업을 강화하라.
애자일 하면 딸려오는 용어가 스크럼 프로세스/스프린트다. 1-4주의 짧은 기간 기준으로 기능을 계획/개발/회고하고, 다시 비슷한 주기로 기능을 개선하는 개발 방식인데, 회사에서 간접적으로 경험은 했으나 왜 이것이 중요한 지는 온전히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책의 칠면조 비유에서, 그 중요성이 선명하게 이해되었다.
수년간 빠짐없이 매일 먹이를 주는 주인에 대한 칠면조의 신뢰는 점차 오르다가 추수감사절 바로 전날 최고가 될 겁니다.
상황이 바뀌면, 과거에 기반해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업무도, 계획과 개발과 테스트는 완전히 다른 업무인데 이것을 새로운 기능 개발에 있어서 순차적으로 진행하면 뒤의 단계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차라리 기능의 복잡성을 축소하더라도, 빠르게 한 사이클의 계획-개발-테스트를 거치고, 더 복잡한 기능을 더 큰 사이클로 계획-개발-테스트하는 것이, 결과물을 예측가능한 일정과 품질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예측 가능성뿐만 아니라, '나는 여기까지, 다음 나머지는 네 책임'같은 업무 선긋기 없이, 다 같이 같은 기간 동안 하나의 목표를 위한 사이클을 돌기 때문에, 의사소통과 협업이 훨씬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애자일에서는 지식을 공유하기 때문에 좋은 정보는 모두가 곧 알게 됩니다.
가장 일이 밀려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확연히 보이기 때문에 프로젝트에서 병목이 되는 사람을 도와주기 쉽습니다
버그 같은 나쁜 일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이 중복 검토를 해서 (짝 프로그래밍, 코드 공유, 퀵 디자인 세션, 코드 리뷰 등) 모두가 실수해야지만 구멍이 나게 바꾸는 것입니다.
말로만 중요성을 들어온 스크럼에 대해서 체감할 수 있었고, 내 개인적인 업무에도 마찬가지로 WTSTTCPW(What’s the simplest thing that could possibly work)부터 짧은 주기로 사이클을 돌다가 키워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불확실성에 맞서 Feedback loop를 만들어 현황을 점검하라.
시대 흐름 상, 인공지능의 시대일수록, 인간이 하는 일은 불확실성이 높은 영역이 된다.
직업에서 독창성, 사회적 민감성, 협상, 설득, 타인을 돕고 돌보기 같은 것들이 요구되는 수준이 높을수록 그 직업은 컴퓨터화하기 힘들다. - 옥스퍼드 대학교, 고용의 미래
또 불확실성이 적은 일을 한다 하더라도, 성장을 하려면, 실수할만한 도전을 하면서 불확실성을 높여야 한다.
세계 대회 수준의 선수는 지역 대회 수준의 선수에 비해 몇 배 더 많은 트리플 액셀을 연습했습니다. 지역 대회 수준의 선수는 자신들이 이미 익숙하고 자신 있는 '예술적 표현' 등의 연습에 시간을 더 썼습니다. 그러고는 트리플 액셀을 많이 연습했다고 착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더 뛰어난 스케이터가 엉덩방아를 더 자주 찧을 수 있다는 것이죠.
불확실한 업무 환경, 즉 이런 모호하고 동적인 목표와 변수들 속에서, 내가 목표를 향해 잘 가고 있는지 그 거리감을 확인하려면, 회고/피드백을 일찍/자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전문가가 안 되는 비결이 있다면 타당성과 피드백이 부족한 환경에서 일하는 겁니다.
내 일에서 매 양치질 직후 구강 거울이나 치면착색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없다면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해 보길 바랍니다.
이 부분은 최근 내가 직접 받은 조언에 대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요즘 회사에서 매우 혼돈의 업무/조직 속에서 일하고 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리스펙 하는 리더에게 티타임을 요청했더니 나에게 'roll the ball'하면서 'feedback loop'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느낌상 귀한 조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맥락이 와닿지 않았는데, 방향을 잃고 있는 듯한 나에게 현재 위치와 목표를 주변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점검해 보라는 의도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나서 해석이 되었다. 업무에 대한 데이터적인 성과 측정을 하긴 하지만, 그 외에, 업무 현황과 관점에 대해 메일/메신저/커피챗을 통해서 다른 조직원/리더와 자주 공유하고 정성적으로 피드백을 받음으로써 내가 목표의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절대적으로 맞는 것은 없다, 사람이 결정한다.
이 부분은 내가 이과생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배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과학에서는 늘, 재현 가능한 절대적 자연법칙을 찾으려 하는데, 그 자연법칙은 맞고 틀리고 가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예를 들면, '0은 1보다 크다'는 절대적으로 틀리며, '0은 1보다 작다'는 절대적으로 맞다. 그러나 사회에 있는 여러 가지 정보나 추세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 사회에서 정한 최소의 rule인 법 조차도,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에서 죄라는 것이 무엇을 기준으로 하며, 감옥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떤 기간 동안 어떤 감옥에 가서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두 사람이 정하고 사람이 실행하며, 시대에 따라서도 바뀐다. 바꿔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은 사람이 맞고 틀리고를 정하고,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래서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할 때, '객관적 사실'로 설득하기보다 '그 사람을 이해하라'라고 설득한다. 이상적인 접근이 '그 사람'에게는 맞을 수 있고, 장기적이지 않고 단기적인 접근이 지금의 '그 사람' 환경에서 맞을 수 있다. 내가 그 사람과 같은 사고관이나 가치관을 가지지 않았어도, 내가 원하는 것을 그에게 설득하고자 한다면, 그의 입장에서 '맞는 포인트'를 말해야 하는 것이다.
논리랑 감정적 판단을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남을 설득하려면 논리성과 객관성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자주 만나서 신뢰를 쌓고,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설명 방식을 선호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출발은 결국 내가 설득하려는 사람에게서 하는 것입니다. 자료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자일'이라는 뜬 구름 같은 느낌적인 느낌의 철학을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사례 중심으로 전달해 준 저자에 감사하다. 불확실성의 극단에 있는 영역을 다루면서, 다양한 직군과 협업해야만 하는 IT회사 직장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예시의 50% 이상이 개발직군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개발자에게는 정말 더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