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비교가 안되게.

이제는 스타트업 고전이 되어버린 피터틸의 제로투원.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던 2015년 구매하고 읽었던 책인데, 10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기술/사업에 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구시대적인 관점이 느껴지지 않고 마치 2025년에 쓴 책과 같은 인사이트가 있는 책이다. 심지어 말미에는 강인공지능을 언급하며 '인공지능은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일자리 대체를 걱정하지 말라'라고 하고 있는데, 정말 피터 틸은 10년을 앞서 살고도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전반에서 그가 가장 강조하는 핵심 아이디어는 절대 경쟁하지 말라는 것이다.

1. 독점

완전 경쟁 하에서는 '그 어느 회사도 경제적 이윤을 창출할 수 없다.'
자본주의와 경쟁은 서로 상극이다.

경제학의 기초인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공급이 많아지면 = 경쟁이 이루어지면, 가격은 내려간다. 하지만 경쟁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제품은 차별화할 수 있다면? 제품은 자신만의 시장을 독점할 수 있고, 이윤을 유지하며,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 굳이 힘들게 이미 시장의 크기가 정해진 곳에 들어가 차별점도 없는 제품으로 적은 이윤을 남기지 않고, 자기만의 시장을 만드는 것만이 성공하는 기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조적 독점'은 모두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사회를 위해서 정말로 좋은 일은 뭔가 남들과 '다른'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독점해 이윤을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독점이 유리한 것은 당연히 모두가 알지만, 꼼수로 ‘경쟁우위‘를 만들고 독점할 생각을 하기가 쉽다. 틸은 ‘월등한 차별성’으로 자연스레 경쟁 없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라고 말한다.

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월등한 차별성을 최소 10배 더 낫다는 것으로 정의한다. 속도가 10배 빠르던, 사용자 경험이 10배 낫던, 10배 차이가 나야 비슷하지 않고 차별화된다. 그리고 그런 차별성을 만들려면 남들과 똑같이 하면서 약간 다른 '점진적 진보'가 아니라 아예 접근 자체가 새로워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창업자 자체가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남들과 다른 생각'은 어디서 오는가?

'남들과 다른 사람' 그 자체에서 온다.

어떤 사람이 사회적 신호에 남들보다 더 민감하다면, 그 사람은 남들과 똑같은 일을 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외골수처럼 관심 있는 일만 파고드는 것도 겁내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일을 믿기 힘들 만큼 잘하게 될 것이다. 소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도 남들보다는 크다.

또 '남들과 다른 사람'이 '남들과 다른 생각'을 했을 때, 그것이 발전하고 실현되려면 소수의 동질 집단이 필요하다. 소규모 집단이 똘똘 뭉쳐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위대한 기업의 핵심이 된다.

위대한 회사란 세상을 바꾸자는 작당에 다름 아니다.
당신만이 알고 있는 숨겨진 비밀을 공유했다면, 상대방은 이제 공모자가 된 것이다.

혼자서 일한다면 절대로 엇박자가 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경우에는 세울 수 있는 회사의 종류에 제한이 생긴다. 여러 사람이 뭉치지 않고 0에서 1이 되기는 매우 어렵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종일 함께 있지 않으면 생각의 차이가 조금씩 벌어질 수 있다.

장기적인 미래를 함께 그려가지 않는 사람들과 일하며,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간을 써버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지속되는 관계가 남지 않는다면 결코 시간을 잘 투자한 것이 아니다.

요즘 다니는 회사가 관계적으로 재미없기에 이 부분이 특히 와닿았다. 그가 제시한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들과 작당 모의를 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실현하며 사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다만 그만큼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결혼만 해도 최근의 이혼율이 높을 만큼 어려운 관계인데, 창업 초기 집단은 결혼에 준하는 수준의 유대관계를 만들고 사업적인 성공까지 만들어내야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2. 명확한 낙관주의

독점 외에 그의 관점 중 와닿은 것은 '명확한 낙관주의'이다. 그는 미래에 대한 관점을 두 개 축으로 놓고, 명확함/불명확함, 낙관적/비관적으로 둔다고 할 때, 가장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 '불명확한 낙관주의'라고 한다.

불명확한 비관주의는 비관주의는 자기 충족적이다. 기대치도 낮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기대했던 그대로의 미래를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불명확한 낙관주의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데 무슨 수로 미래가 더 나아질 수 있단 말인가?

미래를 긍정하고 싶다면 반드시 - 변경되더라도 지금의 계획을 세워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가장 중요한 하나를 얻는 데 집중해야 한다.

벤처기업의 수익은 거듭제곱법칙을 따른다. 몇 안 되는 소수의 기업이 나머지 모두를 합한 것보다 월등한 실적을 내는 것이다.

우리는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잘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오직 하나씩 뿐이다.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현대인이 인생의 의사결정에서 '다각화', '선택권 획득'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여러 분야의 지식을 쌓고, 지금 취직하는 회사가 다음에 '더 좋은, 그러나 어딘지는 모르는' 회사로 옮기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하며 입사하고, 애장품이나 희소한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언젠가 무엇으로든' 바꿀 수 있는 돈을 원한다. 나도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로, 다음 선택권이 많아지는 길= 모두가 추구하는 길 = 그래서 경쟁이 치열한 길을 습관적으로 선택해 왔다. 가장 위험한 자본인 벤처 캐피털 업계의 교훈인 '거듭제곱의 법칙'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중요한 선택'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겠다.

경쟁과 불명확한 낙관주의로 점철된 일상을 사는 와중에, 10년 만에 다시 읽은 이 책이 머리를 친다. 경쟁사회 속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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