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였던 내게 주고 싶은 책

'버리기 위한 읽기' 프로젝트의 첫 번째 대상은 매일매일 자라기, 프로로 자라기, 사람으로 자라기 (김진애 저) 3권의 책이다. 자라기 시리즈는 건축가이자 전 국회의원 김진애 님이 건축 지망생을 타겟으로 하여, 좋은 건축가가 되는 데 필요한 태도와 습관들을 업계 선배로서 조언하는 형태의 자기계발서다. 초판이 1998년인데, 2005년에 개정본이 나온 후 절판 되었다. 당시에는 나름 베스트셀러였어서 나는 2012년쯤에 우연히 알게 되어 구입한 후, 2024년에서야 읽게 되었다.

책 내용의 반절 정도는 건축가 지망생 또는 현직 건축가'만' 집중할 만한 분야 특수적인 내용이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모든 직종의 '일하는 주니어'들이 참고할 만한 관점과 팁이 담겨있다.

예를 들면, '가끔은 자기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같은 내용이다. 그녀는 일하기 싫을 때, '눈감고 딱 2시간만 하자' 결심하고 나서, 2시간을 일한 후 스스로에게 '참 의지 한 번 믿을 만하다'라며 토닥거린다고 한다. '꼭 필요하지만, 하기는 죽기보다 싫은 부탁'을 남에게 해야 할 때도, 이 악물고 부탁하고 나서 스스로를 칭찬한다고 한다.

그녀가 말한 '자신을 칭찬하자' 팁은 내가 주니어 때 깨달은 '주도성'의 가치와도 일치한다. 나는 십여 년간 일을 하면서 성숙한 사람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주도성'이라고 느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사는 데 있어서 그 기준을 경쟁자나 주변 분위기, 혹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정한 듯 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자신의 결정에 따라 자신을 움직일 수 있다. 자신의 깊은 필요에 따라, 본능적 반응을 제어할 수 있다. 그들은 남에게 크게 기대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그만큼 남을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한 자신의 태도에 대해 남에게 좋게 평가하더라도 크게 기뻐하거나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알아준다. 나는 많은 멋진 사람들을 관찰하고 나를 성찰한 끝에 이 '주도성'이라는 성장 방향성을 세울 수 있었는데, 내가 주니어 때 이 책을 정독했다면 더 빨리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깊이 공감한 대목 중 하나는 공부를 오래 하지 말라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서울대 학사에 MIT 석사를 졸업해, 지금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더욱 희소하게 좋은 학력을 보유했음에도 공부를 지나치게 잘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공부를 너무 잘하면 행동의 옵션이 좁아질 위험이 크다.. 학교 공부를 너무 잘하면 '참모'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행동하는 배포가 필요한 '리더'가 되지는 못할지 모른다...
학교 공부를 너무 잘하면 '계속 잘 나가야 한다'는 성공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용기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구구절절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도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애들 중 한 명 수준이었기에, 내가 평생 '공부를 잘하는 사람'으로 포지셔닝해서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적성으로나 능력으로나 의구심이 들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로 진학할수록 성적이 안 좋아졌는데, 대학교 때는 낮은 학점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나오자, 공부가 문제가 아니고 내게 부족한 것은 '대인관계 능력', '행동력'임을 절감했다. 학자의 길을 가지 않는 이상,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또래 사이의 '똑똑함' 경쟁에 과도하게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대학교 이후 길의 갈래가 무한해지면 이제는 속도전이 아니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 예전 내가 좋아하던 어떤 선배의 말처럼 '가장 똑똑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람'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밖에도 메모한 조언과 질문이 몇가지 있었다.

혼자서 올해의 남자와 올해의 여자를 꼽아본다..

미켈란 젤로도 (혼자 제멋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남의 요청으로)커미션 받으면서 일했다..

좋은 스트레스는 오늘의 구체적인 일이다...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무엇으로 (일/자리/사건/경력?) 또 누구 사이에서(동료/비평가/대중/고객) 유명해지고 싶은가?

이런 내용은 건축이라는 분야나 90년대의 시대, 연차와 상관없이 현재의 나에게도 와닿는 내용이었다.

20대에 정독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30대에 읽어도 그동안 사회인으로 성장하며 배운 것들을 한 번 더 되짚어볼 수 있어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다만 중간중간에 엄청나게 두꺼운 정육면체 모니터의 '컴퓨터' 사진이 나올 때나, 종이신문 스크랩을 얘기할 때는 책의 연식이 느껴졌다. 아마 이제는 김진애 님도 자료를 '노트북'에서, 핀터레스트로 저장하거나 스크린캡쳐하여 클라우드 파일로 저장하고 있지 않을까. 초판으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저자가 국회의원 경력 등 그간의 경험을 더하고 최신 자료 관리 기술을 반영하여, 이번엔 시니어/리더를 위한 '자라기' 시리즈를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평점 (5점 만점): ⭐️⭐️⭐️
중고서점에서 사서 봐도 돈 아깝지 않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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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비교가 안되게.

이제는 스타트업 고전이 되어버린 피터틸의 제로투원.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던 2015년 구매하고 읽었던 책인데, 10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기술/사업에 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구시대적인 관점이 느껴지지 않고 마치 2025년에 쓴 책과 같은 인사이트가 있는 책이다. 심지어 말미에는 강인공지능을 언급하며 '인공지능은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일자리 대체를 걱정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