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무르익어가는 여정
매튜 맥커너히, '그린라이트'를 읽고
연기력으로 칭송을 받는 헐리우드 남자 배우의 삶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그린라이트’는 '인터스텔라', '사랑보다 황금',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주연배우 매튜 맥커너히가 자기 삶의 역사와 철학을 최대한 꾸밈없이 표현한 자서전이다. 배우 유태오님이 ‘최성운의 사고실험’ 유튜브 채널에서 극찬하는 영상을 보고, 유태오님을 매력적으로 봤던 나는 그가 추천한 이 책을 구입해 읽기로 했다.
매튜 맥커너히가 출연한 영화 '인터스텔라'는 재밌게 봤지만, 배우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자기 세계가 강하고 본능적이고 터프한 한편, 자기 성찰력이 강한 그의 내면을 발견할 수 되었다.
배우로서의 성공기
내가 아는 매튜 맥커너히, 즉 그가 배우로서 성공하기까지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는 여정은 책 후반부에 등장한다. 커리어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그는, 방황과 히피적인 행보를 보였으나, 점차 삶의 영역들이 안정화되고 사회적인 인정이 쌓여간다. 그는 영감을 따라 아프리카와 아마존으로 훌쩍 떠났다가 정신적 갈증을 해소하고, 숱한 여자를 만나며 본인의 남성적 매력을 발산하다가 한 여자에게 정착해 가정을 이루고, 약과 술에 찌들어 있다가 경찰에 끌려갔다가 억울함을 해소하고, 자신에게 익숙하고 쉬운 배역을 거절함으로써 더 원하던 역할의 기회를 만들어내어 영화계가 인정하는 배우로 자리잡는다. 아는 영화가 등장하고 헐리우드의 은막 뒤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이야기들이 흥미로웠지만, 이 빛나는 여정은 오히려 자기소개서처럼, 하이라이트를 위한 로우라이트를 강조한 듯 해서 식상했다. 그는 분명 멋진 사람이고, 진솔하게 이야기했지만, 전형적인 ‘방황과 정착’ 이야기 구조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역시 다른 사람이 잘 되는 이야기는 구경꾼 입장에서 재미가 없나보다.
상업 예술가를 키운 바람과 영업력
강렬하게 기억남는 것은 그의 성장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과 그의 철학이다. 그의 부모님은 칼을 들고 싸우는 스타일이었고, 서로 두 번 이혼하고 서로 세번 결혼 했으며, 자식이 쏘는 오줌 높이를 내기 삼아 트럭을 얻어내는, 매우 특이한 사람들이었냈다. (미국에서 살다온 사람에게 물어도 미국에서도 흔치 않는 케이스라고 한다.) 자식이 얼마나 자기 철학을 세웠느냐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주먹다짐 끝에 정신을 잃고 나서야, 성인으로서 인정해주는 부모였다. 또 어릴 때 외에 20대에도, 매튜 맥커너히는 호주에 교환학생을 가서 또라이같고 거머리 같은 가족과의 생활을 버티며 보낸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이 사는 미국, 그 중에서도 더 개성이 강한 헐리우드 집단에서, 배우로서 튀려면 내면에 이 정도 광야같은 스토리 정도는 있어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튜 맥커너히가 이런 다이나믹한 여정 속에서 얻은 철학으로서 강조하는 것 '그린라이트'다. 즉 우리 인생에서 노란불 빨간불이 들어오는 시간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나아가기 위한 초록불이 돌아오기 때문에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철학이 계속 강조되며, 심지어 책의 모든 지면이 책등 쪽 부분이 초록색으로 염색되어 있다. (그래서 책이 비싼 듯). 좋은 말이지만, 내게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엄마가 늘 말했다는 메시지다. ‘어떤 곳에 들어갈 때는 그곳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들어가지 마라, 네가 그곳의 주인인 것처럼 들어가라’. 그가 최초 캐스팅 기회를 잡을 때도 그를 도와준 은인이 이렇게 말한다. ‘이 동네는 절박한 처지에 있는 인간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아, 이 동네를 필요로 하지 않을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마’. 내가 영업/사업 관련 직무를 10년간 하면서 겨우 추상적으로 체득해 나가고 있는 교훈과 같은 맥락이다.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본인 노력 못지 않게 타인을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이 때 ‘당신은 아직 정보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나는 혹은 내가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가치가 있어’라는 제스쳐는 협상 우위를 가져가는 데에 있어 결정적이다. 이런 귀한 조언을,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교육받고, 중요한 순간에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코칭 받을 수 있었다니, 그의 삶이 잘 풀리게 된 남다른 비결은 오히려 이 두 사람이 아닐까 싶다.
특정한 의도보다 삶을 담은 책
이 책은 자서전이기에, 특정 결론을 이끌어내는 비문학 장르가 아니라 온갖 에피소드를 시간 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늘 논리적이고, 그럼으로써 요약가능한 명쾌한 글을 좋아해서 읽어 왔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한두 문장으로 요약되기 어려운 이야기를 읽으니 신선하다. 사실 엄격하게 뽑아내어 정렬하지 않고 이렇게 흩어진 모래알과 같이 펼쳐진 글이 인생과 더 닮아있을 것이다.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된 매튜 맥커너히의 사진과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 그대로의 일기들은, ‘날 것의 인생’을 보는 맛을 더욱 살리고 있다.
매튜 맥커너히라는 배우 혹은 소년 같이 순수하고 팔팔한 예술가의 인생 여정이 궁금한 분에게 추천한다.